20평 남짓 다세대주택 한 공간에서 스케치에 열중인 현용민 작가. 모니터 위로 ‘쓱쓱’ 펜을 몇 번 긁어내리더니 금세 익숙한 캐릭터가 완성됐다.
날카로운 턱선, 구레나룻의 마초적 매력과 더불어 앙증맞은 삐삐 머리로 팬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는 그 분, 담임네이터 마구철 선생님이다.
[웃지 않는 개그반]이 연재되자 독자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새 에피소드가 업데이트될 때마다 9점 이상의 평점을 얻는 것은 물론, 독자들 사이에선 담임네이터 코스프레 놀이가 SNS를 통해 유행하기도 했다. 개그 프로그램에선 도발적인 담임네이터의 모습을 차용할 만큼 전 국민의 웃음코드로 자리 잡았고, 바다 건너 일본에서도 마구철의 의상을 따라하는 아이돌 그룹이 출현할 정도로 그 인기는 어마어마했다.
[도대체 왜?인구단]도 현용민 작가의 대표적 실험작(?)이다. 80년대 유행했던 만화 캐릭터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이 작품은 ‘달려라 모하니’, ‘독고턱’, ‘아기공룡 셋삼’, ‘겨털도사’ 등 마이너세계의 삐뚤어진 캐릭터들이 야구가 아닌 축구단을 결성하며 벌어지는 유쾌한 에피소드를 담았다. 현용민 작가 특유의 엉뚱한 웃음 포인트와 더불어 사회풍자가 담겨 있어 수준 높은 패러디물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제는 성공한 웹투니스트 반열에 오른 현용민 작가. 어릴 적 그는 내성적인 성격에 조용히 그림그리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단지 좋아서 그림을 그린 그가 만화가가 되겠다고 생각한 것은 열 살 때부터. 하지만 대부분의 가정이 그렇듯 그의 부모님은 결사반대를 외쳤다.
부모님의 응원에 힘입어 현용민 작가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만화가게를 찾아 유명 작가들의 작품을 섭렵하는 것은 물론, 90년대 당시 불법(?)이던 [슬램덩크], [드래곤볼] 같은 일본만화를 몰래몰래 탐독하며 그 특징을 연구하는 데 몰입했다.
서울예술대학 시각디자인과에 입학한 후에는 여러 공모전에 출품도 하고 출판사를 찾아다니며 작품을 보여줬지만 번번이 탈락, 만화가 지망생인 그에게 데뷔의 문턱은 높기만 했다.
흐뭇한 미소로 빛바랜 페이지를 넘기는 현용민 작가는 그때를 떠올리며 “또 한 번 넘기 힘든 벽을 만난 기분이었다”고 털어놓는다.
창작의 고통 앞에선 장사가 없다고 현용민 작가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스스로 좋아해서 만화를 그려왔던 아마추어 시절과 직업 만화가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컸던 것. 일본 유학에서 기본기를 충실히 닦아 돌아온 그는 [무식아!], [럭키 고 해피], [평행우주] 등을 연이어 히트시키며 중견작가로 거듭나게 된다.
서울 송파구의 빌라 골목에 자리 잡은 현용민 작가의 작업실은 스물한 살 때부터 가족과 함께 살던 곳이다. 지금은 결혼해서 작업실 근처에 보금자리를 틀었고 부모님도 집을 마련해 한 동네에서 살고 있다. 그의 작업실은 30년 동안 거주해온 아늑한 집이기도 하며 만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온 힘을 쏟아내야 하는 전쟁터이기도 하다.
포털 웹툰에서 활약하는 작가들의 삶은 왠지 유쾌하고 재미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막연한 생각일 뿐 직업 만화가의 길은 결코 쉽지만은 않다. ‘독자들의 마음에 들기 위해 직장인들보다 두 배, 세 배 고군분투하는 것’이 현용민 작가가 말하는 만화가의 삶이다.
웹툰작가가 된 지금, 현용민 작가는 자신이 잘하고 좋아하는 만화로 세상과 소통할 수 있어 행복하다.
웹툰작가를 꿈꾸는 청소년들에게 그가 주는 팁은 딱 하나, '스토리텔링을 즐기라'는 것이다. “이야기 풀어내는 걸 좋아해야 해요. 꼭 말을 잘 해야 하는 건 아니고, 글과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으면 돼요. 요즘은 분업이 많아 그림만 그리는 경우도 있지만, 결국은 글을 효과적으로 풀어내는 능력이야말로 웹툰작가에게 꼭 필요한 자질일 겁니다. 이런 저런 스토리를 많이 써보세요. '완성'까지 이뤄내는 작품을 많이 만들어보세요. 웹툰작가라는 꿈이 어느덧 성큼 다가와 있을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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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의 열정에 감동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