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리텔러/연출가 권은아

무대 뒤의
스토리텔러 ‘연출가’
EMK뮤지컬컴퍼니의 권은아 연출가가 말하는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출가의 스토리텔링
글 임지영, 자료제공 EMK뮤지컬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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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뒤의 스토리텔러 ‘연출가’
EMK뮤지컬컴퍼니의 권은아 연출가가 말하는
공연의 시작부터 끝까지, 연출가의 스토리텔링
글 임지영, 자료제공 EMK뮤지컬컴퍼니

EMK뮤지컬컴퍼니 권은아 연출가에게서 듣는
'무대 뒤의 또 다른 스토리텔러, 연출가'

연출가는 무대 위의 또 다른 스토리텔러다. 각본가가 각본을 쓴다면, 그 짜여진 극을 토대로 무대 위에서 진짜 스토리를 펼쳐나가기 때문이다. 막이 오르는 순간 온 몸에 2만볼트 전류가 흐르는 것 같다는 또 한 명의 스토리텔러, 연출가가 들려주는 무대 뒤의 이야기.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기억해 이 밤' 장면
↑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기억해 이 밤' 장면

2021 엑스칼리버그는 관록의 뮤지컬 연출가다. 누군가 자신의 직업에 대해 물으면 할 말이 너무 많다. 연출가의 역할을 한 마디로 압축할 순 없지만, 단 하나의 키워드로만 설명해야 한다면 '소통'으로 귀결될 것이다.

공연의 프로그램북 크레딧에 이름이 올라있는 모든 파트와 소통할 때까지 연출가의 작업이 이어진다. 누군가의 아이디어로 대본의 가안이나 아웃라인이 채택되어 공연이 결정되면 그는 가장 먼저 제작팀과 함께 전체 일정을 의논한다.

대본과 악보의 데드라인, 오디션 일정, 각 디자인의 데드라인, 연습 시작일까지 연습실에 필요한 세트나 소품과 의상 반입일, 공연장에 들어가 진행되는 테크 일정까지 전체적인 타임라인 안에 들어온다. 모든 것이 페이드인(Fade in)되면 그때부터 우리가 알고 있는 연출가로서의 작업이 시작된다.

01

“세워둔 계획에 맞춰 가장 먼저 시작되는 작업은 대본과 음악 작업입니다. 대본의 가안이 존재하더라도 연출 방향에 따라 다시 작가와 함께 대본의 장면별 아웃라인을 잡고, 대사와 곡의 배치를 대략적으로 잡아보는 거지요. 그에 따라 작가가 대본의 초안을 완성하며 작곡가와 작사가가 합류하여 어떤 음악이 필요하고, 누가 부를 지, 어떤 내용을 담을 지를 모두 함께 논의합니다. 그 후, 편곡가와 함께 편곡 방향 등을 의논하며 정리하는 거죠. 보통 창작 작품들은 소수의 배우들을 캐스팅하여 간단한 리딩 형식이나 약간의 동선을 담은 워크숍을 하고 대본과 음악을 전체적으로 점검하며 수정 작업을 거칩니다.”

02

“대본과 음악이 어느 정도 정리되면, 각 역할에 맞는 배우들을 음악감독, 안무가와 함께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합니다. 동시에 모든 디자이너와 함께 하는 프로덕션 회의부터 시작해 무대, 조명, 영상, 의상, 소품 디자이너와 각 파트 별로 디자인의 컨셉을 잡고 디테일을 하나하나 조율해 나갑니다.

물리적으로 필요한 무대, 소품, 의상이 다 논의되면 각 장면을 어떻게 만들어 나갈 지, 안무 장면들은 안무감독과 함께, 무술 장면들은 무술감독과 함께, 드라마 장면들은 연출가 혼자 배우들의 동선을 준비합니다. 또한, 무대감독과 각 장면의 전환을 상의하여 한 장면의 끝과 다음 장면의 시작을 처음부터 염두에 두고 장면들을 만들어가게 됩니다.”

뮤지컬은 종합예술이다. 오케스트라처럼 모든 파트의 합이 딱 맞아야 한다. 현장의 기술적 장치들을 컨트롤하는 건 기계지만, 여기에 숨결을 더하는 건 사람의 '터치'다. 배우들이 공연장 무대에 서기 전, 배정된 디자이너들과 함께 무대, 조명, 영상, 음향 큐를 미리 만들어 기계에 저장하는 시간을 갖는다. 일명 '메모리' 시간이다. 준비가 다 되면 배우들과 무대에서 마지막 조율을 한다.

모든 수정이 끝나면 실제 공연과 모든 조건이 동일한 상태에서 관객 없이 최종 드레스 리허설을 한다. 드레스 리허설과 첫 공연이 끝나도 보통 공연시작 후 1~2주 동안은 공연을 모니터링하며 생기는 아쉬운 점이나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점들을 계속해서 보완하고 수정한다. 오롯이 그의 몫이다.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이교도의 춤과 의식' 장면
↑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이교도의 춤과 의식'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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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경우에는 극본 자체를 연출 방향과 함께 수정한 상태에서 시작을 하는 편이라 아직까진 구현의 제한이나 어떤 어려움으로 인해 수정하는 경우는 없었습니다. 드라마의 흐름상 꼭 필요한 부분이라면 어떻게 하면 신선한 방법으로 표현할 수 있을까에 초점을 맞추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는 방식으로 진행을 하는 편입니다.

다만 특정 섹션이 너무 루즈해지거나 흐름이 원활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고 판단되면, 한 공간에서 필요한 정보와 감정이 다 전달될 수 있게 함축시키는 경우는 있습니다.”

04

“스토리텔링을 하는 과정에서 점점 더 시대 상황을 반영하고 싶어지는 것 같아요. 지금 꼭 이 공연을 올려야 하는 이유, 그리고 봐야 하는 이유를요. 관객의 입장에서 너무 불편하거나 지루하거나 뻔한 것은 최대한 피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요. 전 관객들의 시간에 대한 책임을 가장 중요시 하거든요.

이번 [엑스칼리버]도 기존의 '한 소년이 진정한 왕으로 거듭나는 여정'이라는 큰 주제 위에 “소중했던 모든 삶에 찬란한 햇살이 비추는 날이 곧 올 겁니다”라는 위로를 대대적으로 얹었어요. 그리고 나아가서, “당신이 그 햇살을 비추는 힘을 가지고 있을 지도 모르죠!”라는, 가능성에 대한 희망을 추가했고요. 힘든 시절에 잠시나마 따뜻한 위로와 재미를 느끼며 스트레스를 날렸으면 했습니다.”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장면
↑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장면

그는 스스로 가장 잘 아는 전문가라 생각하지 않는다. 치장하려 하지 않고, 다만 눈과 귀와 마음을 열 뿐이다. 워낙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함께 만드는 것이 공연인 만큼, 함께 하는 크루들이 그의 여백을 빈틈없이 채워줄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르는 것을 아는 척하면 답이 없어지지만, 솔직하게 얘기하면 새로운 배움을 얻을 수 있고 더 큰 모험을 시도해볼 수도 있다. 그가 일찌기 자신의 사수로부터 얻은 깨우침이기도 하다. 이야기를 풀어 나가는 것은 진심어린 소통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진심어린 소통은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 결코 흠이 아니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05

“배우를 예로 들어 볼께요. 모든 캐릭터를 생각해야 하는 저보다 한 캐릭터만 생각하는 배우가 더 신선한 발상을 꺼낼 수 있을 수도 있어요. 반대로 전체 그림이나 다른 캐릭터를 생각하지 못한 배우의 아이디어를 제가 보완해 줄 수도 있고요. 스태프분들께도 자신과 상관없는 분야의 아이디어도 상관없으니 모든 생각들을 편하게 꺼내달라 늘 말씀드립니다.

최대한 누구의 아이디어 인지 상관없이, 처음부터 모든 가능성을 열고 생각해보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모든 것이 눈과 귀와 마음을 열어야 가능한 일인데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다 열어야 한 개인이 갖고 있는 '틀'을 깰 수 있고, 너무나 다른 삶을 살아온 각 캐릭터의 상황과 심정을 더 폭 넓게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해할 수 있어야 배우도, 관객도 이해할 수 있을 테니까요.”

아이디어

그는 요즘 뮤지컬 <엑스칼리버> 공연 준비에 여념이 없다. 그가 생각하는 <엑스칼리버>는 지치고 힘들 때 위로와 힘을 얻을 수 있는 이야기다. 스스로 연출한 <엑스칼리버>에서 그가 가장 좋아하는 명장명은 '찬란한 햇살' 장면이다. 서로에게 서로가 있다면 그 이상 무엇이 필요할까. 그 장면을 접할 때마다 현실의 모든 고민이 부질없어진다. 꼭 우리 모두의 소중한 삶에 찬란한 햇살이 비출 날이 올 것이란 희망이 아드레날린처럼 마구 솟구친다. 스토리텔링의 변두리에는 사람이 있지만, 그 중심에도 사람이 있다. 그는 여전히 뛰고 있는 심장들을 향해 이 진귀한 이야기보따리를 무대 위에 풀고 싶어 한다.

[2021 엑스칼리버] 8. 내 앞에 펼쳐진 이 길_카이_EMK제공
↑ 뮤지컬 [엑스칼리버]중 '내 앞에 펼쳐진 이 길' 장면
06

“요즘 들어 정의의 여신상이 생각나요. 오른 손에 든 저울의 한 쪽엔 현실, 다른 쪽엔 이상이 담겨있고, 왼 손에는 칼 대신 제가 늘 집착하는 “시간에 대한 책임”이 쥐어져 있다고요. 머릿속으로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펼치는 일은 매우 즐거워요.

하지만 현실에서 그 그림이 어떻게 표현되고 실현될 수 있는 지는 굉장히 고민스러워. 어느 한 쪽으로 기울면 전부 무너져버리죠. 이 저울질을 잘 해내야 제가 제시하는 방향을 믿고 함께 곁에서 걸어주시는 모든 스태프, 배우분들의 시간을, 공연을 보러 와주신 관객분들의 시간을 의미있게 만들수 있으니까요.”

07

“저는 아직 대단한 사람은 못 되어서 ‘연출가’란 직업의 정의를 생각하면 계속 ‘무게’라는 단어에 짓눌리나 봅니다. 연출가는 모든 사람들의 중심에 있지만 가장 외로운 자리이기도 합니다.

엄청난 고통이 따르기도 하지만, 그래도 공연장을 찾는 사람들 앞에 보석같은 이야기를 펼쳐놓는 순간이면 최고의 희열을 느낍니다. 비할 데 없는 그 순간의 희열이야말로 모든 노고와 고통을 잊게 해주는 굉장한 보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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